〈올바른 소음〉
딱 만 원만 빌려 갈 생각이었다.
딱 만 원만 빌려 갈 생각이었다. 몸을 뒤척거려 엄마가 잠든 것을 확실히 하고 살껍질처럼 엄마와 내게 붙은 얇은 이불을 몰래 기어나왔다. 옷장 뒤에 숨겨놓은 겨울 양말을 신고선 돌다리를 건너듯이 엄마 두 발을 하나씩 넘었다. 잠깐 문 앞에 서서 엄마를 보다가 문고리를 두 손으로 부드럽게 감쌌다.
안 미끄러질 정도로 손을 조금씩 조여서 동그란 문고리를 단단히 잡고 손잡이를 돌렸다. 속에 뭐라도 풀린듯 경박하게 달각거리는 손잡이를 손으로 느끼고 또 미세하게 힘을 조절하면서, 귀가 듣는 소음에 집중했다. 손잡이의 회전이 끝에 닿을 때 마치 주먹 안에 동전 두 개가 점잖게 부벼지는 것 같은 쇳소리를 냈지만, 시곗바늘 소리보다 작았다.
경첩 삐걱이는 소리를 최대한 죽이려고 문을 살짝 들어 올리듯이 끝까지 돌아간 문고리 손잡이를 머리 위로 밀면서, 당겼다. 모든 힘을 최대한 같이 유지하며 문을 천천히 열었다. 거무칙칙한 회색이 방에 깔린 어둠을 한겹씩 벗겨내자 기포처럼 울퉁불퉁 부풀어오른 문 앞쪽에 붙은 장판이 보였다. 그것들은 밟으면 바닥에 붙었다가 찌직 풀 떼지는 소리를 내기 때문에, 지뢰밭을 걷듯 발끝으로 기포 사이를 한 걸음 밟고 다시 다른 발을 단단한 문지방에 올려놓는데 성공했다.
발뒷꿈치를 축으로 매끈하게 몸을 돌려 좁은 문의 틈으로 어깨를 밀어 넣을 때였다. 검은 어둠 속에 뚫린 허연 구멍 두 개를 보고선 소름 먼저 귀와 뒤통수에 돋아 팔 끝까지 쫙 뻗쳤다. 눈을 뜨고 가만히 나를 보고 있는 엄마와 눈이 마주친 것이다. 물이 가득 찬 항아리가 깨지듯이,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찰캉!
즉시 손이 놓친 문고리가 날카로운 쇳소리를 냈고 나와 엄마는, 동시에 어깨를 움찔했다. 식은땀이 등을 전부 감쌌고, 습한 검은 공기 속의 침묵은, 시곗바늘이 열몇 번 째깍이며 1초씩 멈춘 시간을 썰었다.
꼼짝할 수도 없었다. 닦을 수도 없는 땀만 흘러서, 턱 끝에서 한 방울 툭, 장판 위로 떨어졌을 때 나는 흠칫 놀라 발을 하나 들었고, 엄마는 눈도 깜짝 안 했다. 대신에, 붕 뜬 채로 축 늘어진 내 발이, 그만 뭉클한 그 장판 기포를 밟고 놀라 다시 떼버렸을 때,
주지직—
맨살이 찢어지는 듯한 장판 떨어지는 소리에 엄마는 작게 눈을 찌푸렸고 내 발 쪽을— 어둠 속에 혼자 하얀 내 양말을 보고서는 작게 픽, 웃음인지 한숨인지 모를 것을 내쉬더니 그냥 눈을 감았다.
*
나는 부엌에 나가서 엄마 지갑은 쳐다도 안 봤다. 조용 조용 찬장에서 컵을 꺼내 졸졸졸, 물만 따라 마셨다.
한 잔은 엄마가 들으라고 목으로 꼴깍꼴깍 마셨고, 뜨겁게 데워진 몸의 속과 그 겉을 축축하게 감싼 땀을 식히려고 물을 병째로, 아무런 소리도 안 나게, 얇게 한 줄씩 한참을 더 마셨다. 그바람에 아침까지 잠도 제대로 못 잤다. 오줌이 마려워서.
방으로 돌아와 힘들게 또 닫은 문을 다시 열고 다시 닫고 하는 게— 오줌 참는 것보다 백 배는 더 싫었다.
절대 엄마는 밤중에 화장실을 가지 않기 때문에, 한밤중에 화장실에 가기 위해 문을 열고 닫을 때에 마땅히 내야 할 소음의 크기를 나는 알 길이 없었다.
1초마다 째깍이는 시곗바늘 소리만 내 기준이 되었다. 1초보다 크거나, 작거나, 비슷한 소음의 알맞음. 상황에 따라서 문을 여는 자연스러운 속도. 적당한 걸음걸이. 그런 것을 나는 언제나 혼자 가늠을 해야 했다. 시골 할머니 집으로 맡겨져, 작은 방을 나 혼자서 쓰기 시작한 4학년 겨울방학 때까지.
할머니는 눈과 귀가 어두워서 훨씬 편했다. 그리고 유전인지 잠들면 아침까지 시체처럼 꼼짝도 안 했다. 아무것도 조심할 필요가 없었다. 돈은 적당한 애들을 골라서 빌렸고, 밤낮 없이 쏘다니고 마음대로 집을 들락거렸다. 내 방에 째깍거리는 시계는 없었다. 내 손목에도 시계 따위 채워진 적 없었다.